박득현 조부의 처외조부, 박유간 증조모의 외조부 호장(戶長) 이광유(李光裕) 또는 부호장(副戶長) 이광유(李光裕)입니다. 고 모소사 본 동촌(故 母召史 故本 同村), 죽은 어머니 소사의 본관은 동촌(同村, 같은 촌)이라는 뜻입니다. 박득현 조부 도령중랑장(都領中郎將) 충대(冲大)의 처부 동정(同正) 김주(金柱)의 본관은 우계(羽溪)인데, 同村이라면 도령중랑장 충대의 장모도 같은 우계현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호적을 작성할 1372년 당시 박득현의 나이는 年八十一, 81세이니 1291년생입니다. 박득현의 조부 박충대를 1220년대~1250년대생 정도로 추정한다면, 박득현의 조부 도령중랑장(都領中郎將) 충대(冲大)의 처부 동정(同正) 우계김씨(羽溪金氏) 김주(金柱)는 1200년~1220년생 정도, 충대의 장모 동촌(同村, 같은 촌) 출신인 우계이씨의 친정아버지 호장(戶長) 이광유(李光裕)는 1170년생~1190년대생 정도로 추정됩니다.
최대한 연대를 낮게 보더라도 박득현의 조부 박충대를 1230년대~1250년대생 정도로 추정한다면, 박득현의 조부 도령중랑장(都領中郎將) 충대(冲大)의 처부 동정(同正) 우계김씨(羽溪金氏) 김주(金柱)는 1210년~1230년생 정도, 충대의 장모 동촌(同村, 같은 촌) 출신인 우계이씨의 친정아버지 부호장(副戶長) 이광유(李光裕)는 1190년생~1210년대생 정도로 추정됩니다.
아마도 우계김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것 봐서는 강릉김씨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 것은 차후에 알아봐야 할 내용입니다. 우계김씨(羽溪金氏)인 분과 연락이 닿는다면, 그래서 그 쪽 족보를 확인한다면 좀더 자세히 알수 있을텐데, 이 부분은 아쉽습니다.
박득현 호구에서 故母召史 故本三陟外祖將士郞良醞令同正沈允儀 라는 항목이 있는데, 박득현의 어머니 소사는 본관이 삼척이고, 외할아버지는 장사랑 양온령동정 심윤의(沈允儀)라 합니다. 중윤 호장을 지낸 4세 이홍준(李洪俊)의 부인이 삼척심씨로, 장사랑 양온령동정(將士郞良醞令同正) 심윤의(沈允儀)의 딸입니다. 박득현이 우리 5세 예빈경 이구(李球, 1265년생)의 이종사촌동생이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박득현(1291 ~ ?)의 아버지 낭장(郎將) 박용(朴龍)의 처는 삼척심씨인데 양온령동정 심윤의의 딸이다.<1372년 작성된 박득현 호구>
우리 5세 이구(李球, 1265 ~ ?)의 어머니이자 4세 이홍준의 처는 삼척심씨인데 양온령동정 심윤의의 딸이다.<우계이씨 족보>
1291년생인 박득현과 1265년생인 우리 5세 이구는 이종사촌간이지만 나이차이가 26세나 난다. 또한 이구의 아들 중 한명인 6세 이백경(李伯卿)이 1290년생이다. 외가로는 이종 사촌형제이지만 26년 나이차가 난다는 점은 입증되었습니다.
다만 박유간 호구에서는 戶矣祖妻父將士郞 良醞令同正沈允儀故本三陟 父檢校少監沈候故祖軍器注簿同正迪冲故曾祖 檢校少監沈良 이라 해서 심윤의의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少監) 심후(沈候), 조부는 군기주부동정(軍器注簿同正) 심적충(迪冲), 증조부는 검교소감(檢校少監) 심량(沈良) 이라 합니다.<1372년 작성된 박유간 호구> 4세 이홍준의 처조부, 처증조부, 처고조부, 5세 이구의 외증조부, 외고조부, 외5대조는 확인이 됩니다.
우리 3세 이적(李迪)이 강릉 우계현 호장으로 취임한 이후, 4세 이홍준(李洪俊)이 중윤과 호장을 지내고, 그 뒤로는 홍준의 동생인 4세 이공용(公用)의 5대손 양달(陽達)이 정조호장(正朝戶長)이 되었는데, 9세 양달의 연대는 대략 조선 태종~세종 정도로 추정되며, 3세 이적의 연대는 12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그 사이에 호장직을 세습했거나 돌아가면서 했을 때 분명 중도에 다른 인물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호주의 처 옥당군부인 이씨는 나이는 68세이고 본관은 우계현이다. 아버지는 인화전직 이사순, 죽은 할아버지는 검교군기감정 이천승, 증조부는 진사 양정재생(원나라 양정재에서 수학했다는 뜻) 고인으로 이옥은 옛이름이고 이름은 이구이다. 외조부는 경릉직 금철로 본관은 봉화현사람이다. 그들은 1남을 낳았는데 천영으로 나이는 51세이다, 딸은 소사로 나이 49세이고, 2남은 동정 천길로 나이 44세, 2녀는 소사로 나이 39세, 3녀 소사는 나이 29세, 3남 천말은 나이 20세이다.(이 네 명은 나이차이가 30여세 나는데도 모두 동복입니다.)
옥당군부인 이씨가 우계이가 사람이니 군부인이나 부부인을 봉작할 때는 당연히 그의 친정 본관을 붙이는것이 상례이므로 본관인 우계나 옥천 또는 옥계 혹은 그 별호인 옥당, 우곡, 옥곡 등 중에서 하나를 취하여 옥당이 되었습니다. 우계군부인은 또다른 분의 딸인데 이미 있음.
호주의 처의 증조부 진사 양정재생 고인 이옥(옛이름) 이구의 본관은 우계현사람으로 아버지는 호장 중윤 이홍준, 죽은 조부는 호장 이적, 죽은 증조부는 호장 이순우, 죽은 외조부는 장사랑 양온령동정 심윤의로 본관은 삼척군 사람이다.
따라서 이순우-이적-이홍준-이구(1265 ~ ?)-이천승-이사순 까지의 가계는 1415년에 이미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 2세 순우가 호장을 지냈다는 것은 조금 의문이 듭니다.
박득현의 조부 박충대의 처외조부 호장(戶長) 이광유(李光裕)는 1170년생~1190년대생 혹은 1190년생~1210년대생 정도로 추정됩니다.
2세 대사성 이순우가 1163년(고려의종 17) 10월에 문과에 급제했다는 것이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나타나는바, 2세 순우의 출생년대를 1130~1140년 정도, 아마도 약 1138년은 이전으로 추정되는데, 우계현의 호장(戶長) 또는 부호장(副戶長)을 지낸 이광유(李光裕)는 이순우의 아들이거나 손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세 이적(李迪)이 해령산에 들어가 10년간 은거를 했다는 것과, 1196년(고려명종 28) 우리 2세 대사성 순우가 살해된 뒤에도 아마도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해를 당하지 않은 것을 본다면 그당시에는 이미 성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광유가 3세 이적(李迪)의 아들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5세 이구는 초기 족보에 이미 1265년생으로 기록되었는데, 3세 이적의 출생년대는 대략 1160~1170년경, 4세 이홍준의 출생년대는 1210~124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2세 순우가 호장을 지냈다는 것은 착오로 추정되는데, 이광유를 호장이라 했다가 부호장이라 하는 등의 착오가 보이긴 합니다. 당시 연령 81세인 박득현의 조부의 처외조부면 고조부뻘인데 그 사이에 이광유가 다시 새로운 직책을 수행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경주에서 강릉 속현 우계로 올라온 시조나 그의 아들 2세 금성군 순우는 중앙관이었습니다. 그런데 3세 이적(李迪)이 우계현 호장을 역임합니다. 분명 금성군 이순우나 이적 둘 중 누군가는 우계현이나 주변 지역의 유력 가문이었을 강릉김씨, 우계유씨 라고도 부르는 강릉유씨, 삼척심씨, 삼척김씨, 그리고 아직 확인이 되지 않는 우계김씨, 등주박씨(밀양박씨 한성공파로 변경된 것 같습니다.) 등 우계현이나 명주군(강릉) 지역 집안의 딸과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계현의 호장자리에 올랐을까요? 대사성 이순우가 최충헌에게 살해되고 가문이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할아버지 대에 혹은 아버지 대에 경주에서 이주했지,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어떻게 호장이 되었을지?
추후에 더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다만 삼척이씨는 선대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뭐라 확답을 못드리겠습니다.